자연· 삶· 예술의 어우러짐을 이곳 매물도에서 느끼자! 빛과 바람의 섬! 매물도

자연· 삶· 예술의 어우러짐을 이곳 매물도에서 느끼자! 빛과 바람의 섬! 매물도


당금마을

자연, 문화, 역사, 예술이 결합된 섬을 꿈꾸는 당금마을.
마을 안 문패마다, 산책하는 고갯길마다, 정겨움이 느껴지는 돌담길마다
한올 한올 새겨진 마을의 이야기들.
아름다운 풍광과 낭만 스토리가 가득한 예술로 꿈꾸는 감성마을.

역사와 전통

예전에는 이 억새를 엮어서 미역을 말렸다고 한다.

정착, 이주의 역사(정착사, 이주의 계기)

“우리 마을은 원래 중국의 비단처럼 자연경관이 수려하다고 하여 당금(唐錦)이라 칭했지. 마을이 형성된 지는 200년 정도가 되었어. 당금이랑 대항이랑 비슷한 시기에 마을이 생겼어. 입주를 했고. 인제 우리 때만 하더라고 대항마을이 큰 마을이었지. 70여 호수가 돼 있었고. 우리 마을에는 40여 가구가 살았고.” (천식만)

방풍밭에서 방풍나물을 캐고 있는 천식만 할아버지“매물도가 교통도 좋지 않고, 일 년에 한두 번 시내로 갈까 말까할 정도로 풍랑이 세고 이러니깐 노를 저어서 동력도 없는 시절 아니가. 여기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사시사 나무가 울창했어.

지금 밭가에 방풍림이 서 있는 게 그거는 인자 곡식을 재배 하기 때문에 울타리를 세워 놓은 거야. 나무기 같이 지천에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울창한 숲이었어. 전부 다 벌목을 해가지고 우리 조상들이 밭을 일구었어.” (천식만)

“그때는 농경사회 아니가 그러니깐 밭이 없으면 굶어 죽는 거야. 우리 조상들이 땅을 개척 할 때 이 농경지로 만들 때 한 두 사람 힘으로 안 되거든. 그러니깐 단합을 한 거라. 친목계를 모았어. 계를 모아가지고 오늘은 이집 일, 내일은 저 집 밭 이렇게 해서 수 많은 날을 겪으면서 매물도에다가 농경지를 다 만들었고, 집도 흙 담을 만들었어. 흙 한짐 놓고 돌 놓고, 집 짓는 것도 계를 모으고.” (천식만)

마을의 형성, 변천사(성씨 촌, 인척 관계, 마을의 옛 모습, 지금의 모습. 독특한 풍습, 전설)“김해 김씨가 맨 처음 들어왔다고 하데. 나머지는 다 타성이고. 두 번째가 박씨 세 번째가 천씨 조씨 이런 순서라. 이래 보면 다들 친척 관계고 그래. 남이 없고 그래.” (천식만)

“옛날에는 다 개울가에 뒤지다 보믄 전복도 있고, 미역도 있고, 별석이 다 있는디. 그거를 전부 선착장 하면서 뜯어 노으니께 지금은 없지. 선착장 있는 고쪽에 돌이 있어가 고동하고 그런 게 많았어. 솜(작은 성게를 이름)도 있고.” (이삼순)

“박정희 정권 지나고 통영에서 여객선이 들어오면서 이제 좀 교통이 편리해 놓으니깐 이제 좀 살만하지. 물고기 잡아서 팔 판로도 생겼고.” (천식만)

“그때부터 천천히 민박하구로 했어. 그 전에는 스쿠버 했거든, 스쿠버 하시는 분이 저 밑에 있었어. 한 두 분만 와가지고 개척, 두 세집만 이렇게 하고 있었거든. 하다가 차츰차츰 늘려난 거지. 처음에는 스킨스쿠버하고 민박했제. 스킨스쿠버 하다가 인제 스킨스쿠버 소문이 나고 하다보니깐 민박도 하고 차츰차츰 사람도 오고,” (김진미)

“요기 애기장이란게 있었어. 애기장. 애기 죽으믄 독에 묻는 그런 거는 이가 안 나고. 이 안 나고 한 아들은 이 병 도우 안 있나. 도우 밑꾸이 삐뿌고(빼고, 독 밑을 빼는 이유는 아이들을 묻으면 죽고 나서 생기는 물 때문에 독에 밑을 뺐다고 하네요)돌로 가지고 싸서 묻고 그랬다. 이 안 난 아는 땅을 파서 묻고, 옛날 법이 그거 드라.”(이삼순)

일상생활

결혼, 제사, 장례 中 결혼, 가마타고 섬으로 들어오던 때를 기억하는 할머니

“그래 요새와가 가만 생각해 보믄 그때 나 결혼 할 때 그 파도가 얼마나 쳤는고. 그인자 내 따라온 아들하고 밤바다에 나올 때 배가 한번 턱 했는데 함 짚어부이 했는기라. 함 짚어가고 퍽 이랄 때 가매가 인자 그때 탔거든. 가매가 훅~ 해가꼬 남자들이 딱 봐도 요래가꼬 싸고 이랬거든. 가매 넘어 갈 낀가 싶어서. 아이고 야 그래가꼬. 그때 방파제가 있나 뭣이 있나. 그냥 마 배를 고마. 쭉 끌어가가. 자갈밭에 배 쪼게난 게 갖고 꺼 내렸다가 꺼올렸다가 그랬거든 사람을. 어 그랑께. 큰 배에서 작은 배 딱 가매 실어가꼬. 인자 어느정도 딱 저서 오믄 인자 물 내려갈 때 요래 마 건지가지고 바리 동산에 안 올맀나. 대밭있는 거기까지 가매를 탔으이 우찌됐노. 얼마나 그 까꾸막을 마이타고 가노.” (천금연)

가족, 가족과의 헤어짐(학교, 직장의 문제로 외지로 나가서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가족들과의 만남, 편지

“초등학교 졸업하고 학군을 돌려가지고 다 외지로 통영중학교로 나가고 고등학교도 나가고 그래됐지. 중학생이 되면 밖에 나가는 게 예삿일이라. 우리 매물도에서는 유학이라 그랬어. 유학생 매 한가지라. 중학교 모자를 쓰고 교복을 입고 그러면 매물도하고는 이별이라. 겨우 일 년에 한두 번 올까말까. 멀지. 고향을 찾을 수가 없어. 도시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그 애들이. 섭섭하고 그렇지만 자녀들 교육을 시켜야 되고, 우리는 못 살았으니깐 저거들은 도시에서 아버지처럼 살아서는 안 되고 하니까,”

일상 속 특별함. 섬으로 들어오는 관광객들과의 만남, 재미난 스토리. 통영으로의 나들이

“수성구에 왜 큰 한약방 하는 사람이 있어. 두 개를 하는데 그 사람 문씨인데 문홍규라고 있다. 그 사람 종종 전화 온다. 아들. 아들 잘 있다고 . 아들로 삼았어. 1년에 한 번씩 약 해온다. 그래 한 번씩 오면 자고 오면 고기 낚아오고 고기 안 낚고 자고만 있다가고. 약해가 오면 반갑고 고맙고 그렇다. 십년 넘었어. 첨에 내 민박할 때 손님으로 왔어. 이래와가 보고 내 아프면 거기에 맞게 약을 지어다가 보내줘. 성의가 고마워서 받고 하지.” (김명찬)

“별다를 것 없는 나들인데도. 시내나간다고 좋아하지. 어데 평일날 여 있다가도 애들이 시내 한번 나가 놓으만 완전 이제 옷 사고 뭐 사고 완전히 쇼핑이잖아. 그래가 애들하고 손잡고 시청에 갔다가 목욕탕에 갔다가 먹을 것도 사먹고 이러고. 여기 오면은 못 사먹지. 떡볶이가 있나. 아 먹을 게 없어서 돈을 못 써. 돈을 줘도 돈 쓸데가 없는 거야. 구판장 가면 맨날 과자 새우깡 하나 뭐지 아이스크림 하나 그런 거고, 그러이 돈 모아놓았다가 시내 나가면 목욕하고 아이스크림. 이게 통영가면 필수 코스지,”

노동, 경제,교통

생업. 통영 장, 척박한 섬에서의 생활

“우리 유년시절만 해도 그러니까 한 달에 한번 정도 시내에 장을 보러 나가는 그런 시절이었어. 고기를 잡아도 판로가 안 도니깐 가난했었지. 여기서 생산되는 것이 유통이 되어가지고 교류가 되어야지 많이 있어도 그 자원을 판로가 안 되니깐 경제가 그만큼 어려운 거라.” (천식만)

“그때는 집집마다 배가 없었어. 노 젓는 배 조그만 한 게 그런 게 있었어. 그거를 하루에 나가서 미역을 딴다든지 고기를 낚는다든지 하면 선착장이 없으니깐 몽돌 그런 식이 꽤 있었거든. 매일 배를 올려놓고, 작업 나갈 때 또 내려야 되고, 그래서 띄워 놓을 수가 없어서 방파제가 없어서. 그렇게 어렵게 살아왔다고. 고기는 풍부했어. 많이 있었어. 나가서 그걸 시장에 팔아가지고 생활필수품을 사야 되는데 유통이 안 되니깐 말도 못 하게 어렵게 살았지.” (천식만)

“밭이 없으면 굶어 죽는 기야. 더군다나 낙도에서 여기는 주식이 뭐였나면 고구마, 옥수수 주식이었어. 보리도 조금 있지. 보리가 있어도 아주 부족했고 쌀은 아예 없고, 쌀은 조금 있었지만은, 쌀농사는 뭐 남해가면 계단식 다랑이 논이라 그러면서 그처럼 여기도 다랑이 논이라고 해가지고 논이 조금 있었지.” (천식만)

“보릿고개는 우리 유년시절에는 못 느꼈지만, 우리 선배들이나 부모들은 물 한 모금씩 마시고 끼니를 때운 시절이 있다고 들었어. 그러면 바다에 가서 아까 거북손 있잖아. 거기 소라 홍합 이런 게 지천으로 깔려서 이런 걸 먹고 짜니깐 물을 많이 먹고 그래서 끼니를 때우고, 바다 것을 계속 복용하니깐 사람이 붓더래, 곡물이 안 들어가고, 얼굴이 이래 퉁퉁 붓는다고. 짠 거를 많이 먹고, 곡물을 못 먹으니깐 우리 인체에 그런 현상이 오더래. 이 톳 같은 걸 주로 많이 먹었어. 요즘은 톳이 없어서 못 먹는데 귀한 건데. 그때는 그게 우리 주식이었으니까. 그리고 물고기. 육고기는 귀했어. 육고기 귀해서 쥐도 잡아먹은 할아버지가 있다고. 개구리 쥐 같은 것도 잡아서 소금에 구워가지고 먹는 사람도 있었고.” (천식만)

“옛날에 통영 한번 갈라면 힘들었지. 돛단배 타고 노 저어서. 노를 저으니까 밤에 잘 수가 있나. 못 자. 목적지까지는 밤새도록 저어가야 돼. 힘도 들고 그렇지.” (김명찬)

공동체/신앙

해녀에게 바다를 파는 어촌계, 노인회의 활동

“자기 식 바당(바다)이 하나씩 있거든. 그 사람들은 이제야 들어와서 삼년을 살기 때문에 올 금년에야 바당을 줬거든, 금년 바당을 객지에서 살다가 여기 살러 집 짓고, 집 안 짓고 남의 집에 사는 사람은 바당을 안 주고. 내 집이라고 집 지어갖고 집을 해서 살면 삼년을 살면 바당을 주는 거라. 자기 식의 바당을 .그렇지 여기 동네 사람은 다 가지고 있지 다 내 마당을 가지고 있지.”

“노비집 사는 사람 뭐 여기는 노비집 사는 사람도 없지만 노비 집 사는 사람은 바당이 없고 집 지어서 사는 사람들은 다 있지. 여기 어촌계니까. 내 바다 그러면 면적이 좀 너르지. 좀 크지. 우리가 바다에 해녀 질 하는 사람들은 어촌계에 돈을 내놔서 하거든. 돈을 안 내 놓으면 안 되거든. 또 작업하는 사람 없는 집에는 그 돈이 없으면 안 되거든. 그래서 다 모아가지고 일 년에 한 십이월 달 되면 그때는 동네 돈을 다 뭉쳐가지고 호당 한 집에 몇 십만 원 씩 오십 만원이면 오십 만원. 칠십 만원이면 칠십 만원 다 주거든.”

“바다에 저 어촌계에 그 바당을 파는 택이지. 해녀들한테 우리 바다지만 어촌계꺼기 때문에 바다를 팔아가지고 그 돈을 모아서 있다가 12월달 되면 이제 설이 돌아오묜 이제 동네 호당 돈이 얼마씩 몇 십만 원 씩 갈라서 주거든.”

“갈라 줄 때 해녀들도 다 받지. 그렇지 다 내 돈이기 때문에 우리만 해녀들 하는 사람들만 돈을 번다고 돈을 별도로 내는 거지. 우리 해녀들은 우리 당금바다에만 인자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렇고 고기 낚는 사람은 어디에 가서 그거해도 그거는 없기 그건 돈을 내놔서 하는 게 아니고 우리 해녀들만.” (강정자)

매물도 어촌계는 당금, 대항, 소매물도 이렇게 3개로 구성되어있다. 각자 독자적인 바다를 가지고 있으며 해녀들도 각자 마을 앞 바다에서 활동한다. 당금 대항마을인 속해 있는 대매물도에는 어촌계장이 한명과 간사 한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년의 임기를 가진다. 당금 대항마을 돌아가면서 어촌계장을 맡아서 하고 나머지 마을은 간사로 어촌계장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매물도는 대매물도와 달리 독자적인 어촌계를 가지고 있다.

“옛날에 여기 노인회에서 관광객들 와서 관광 할 때 텐트치고 하면 텐트 요래 청소해 주고 텐트 비 우리 노인회서 받았어. 오천원씩 그거는 아무 그것도 없이, 청소, 당신네들이 여기 와서 버리고 가는 쓰리게 청소하고 치워주는 댓가를 받는 거다. 자리 세를 받는 거 아니다. 그래도 안 줄라고 다툼을 하고 그러니깐. 섬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분리수거를 하는데 주로 종이류는 태우고 음식 찌꺼기는 밭에다 묻고 퇴비용으로 캔 같은 건 모아 놓으면 시청에서 가져가고.” (천식만)

신앙. 섬과 관련한 당산제

“어, 대항마을에 동제를 모셨거든. 원산에 동제를 모셨는데 한 다섯 집만 참석을 했거든. 이 마을에서 전체로 참석한 게 아니고. 참석이 안 돼. 왜냐면 조상 때부터 집안이 그대로 돼 있는 사람만 제물을 바치도록 되어 있어. 대항마을에서도 한 열 집정도 되고, 원산에는 대항마을이 거기 있었고 각 마을마다 분교처럼 각 당이 하나씩 있었어.” (천식만)

“저 위에서 음식을 해가꼬, 장군봉(대항마을)에 가서 색시하고 영감하고 영감둘이 그래가 음식을 해가 가서 지게로 지고 가서. 다 지고 가고 그래서 인자 쌀로 가서는 인자 물하고 가가고 밥을 해서 놓고 소채를 그냥 손으로 비비고 소주를 올리고, 대추 이런 거 올리고. (중략) 불을 떼서 밥을 하는데. 나무를 탁 인자 짐을 실러 간 사람은 먼저 가고. 밤에 인자 요래놓고 인자 다른 집은 다 불 안 켠다. 할 사람만 불을 키아 놓는 거라.” (김점연)

“장군봉 올라가고 그래 해 놓고 인자 내려와 가서 날이 하옇게 새면 또 뫼를 지어서 가몬 그 큰 나무 안 있더나. 거기 가서 절하고 이래놓고 하믄 인자 밥상이 전부 다 거기로(후박나무)로 간다. 한목(대항) 저 집집마다 당금밥상도 가고. 밥을 해 가서로 밥상으로 갖다 놓는다 말이다. 동제 지낼 때 장군봉 가서 먼저하고 다음에 내려와서 나무에 밥상 올려놓고. 장소가 세 개지.” (김점연)

음식

매물도의 고유한 음식(빼때기 죽),매물도 대표 음식(홍합)

“부자라고 있어. 부자는 고구마 삶아가지고 말려서 한 거고, 나머지(빼때기)는 그냥 씻어가지고 말라가지고. 말랐는 거라고 있어. 삶은 고구마 말린 게 부자라. 부자도 있고 빼때기도 있고 빼때기는 생고구마 깍아가지고 비스듬하게 잘라서 말린 거고, 그래해가 죽처럼 해가 빼때기 죽이라고 해가 그래 안 먹었나.” (김명찬)

쌀농사, 보리농사가 없던 매물도에서는 식량대신으로 고구마를 많이 먹었다. 일종의 구황식품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고구마는 생고구마를 잘라서 엇비슷하게 말려서 거기에 설탕으로 간을 하고 약간 걸쭉하게 만들어 죽으로 먹었다고 한다. 달달한 맛이 팥죽과 비슷하다.

부자와 빼때기의 차이점은 부자는 삶은 고구마를 이용해 말렸고. 빼때기는 생고구마를 말린 것이다. 이 빼때기는 매물도 고유의 음식은 아니지만(경남 지방에서도 빼때기 죽을 흔히 볼 수 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이 빼때기 죽, 부자를 해 먹고 있으며 실제로 조사자들이 마을에 들어갔을 때 이 빼때기 죽과 부자를 대접받았다.

빼때기와 부자는 집집마다 조금씩 만드는 방법이 다르며 기호에 맞게 밀가루 수제비 뜬 걸 넣어서 맛을 내기도 한다.

“담치(자연산 홍합), 담치 까면 알이 나오거든. 고놈을 삶아가지고 인자 이런 대를 가지고 꼬쟁이를 만들어 갖고 끼어가지고 새끼를 까거나 까가지고 엮어서 다 해놨다가 풀면 그게 250개에 40만원 씩, 50만원씩 이렇게 갔다. 그리고 홍합 그게 물로 대리믄 조청, 검은 조청처럼 그거는 암에 먹으면 참 좋고. 요새는 그런 기 없다. 그런거 해 갖고 그거 한 되 돈을 사믄 요새 같으면 30만원, 40만원 갈 끼다. 껍질 까까지고 그 홍합 삶은 물로 다리면 시커먼 물 . 엿 같이 까맣게 안 고아지나 고거거든. 그래가지고 암 걸린 사람들은 수술하고 그런 사람들은 많이 먹고 그랬거든.” (이삼순)

자연산 홍합인 담치는 예전 매물도 사람들이 낚시를 할 때 물고기를 낚는 밑밥으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특산물

매물도 최고의 효자 상품 미역, 중풍 예방에 좋은 방풍나물, 매물도 미역이 맛 있는 이유

“옛날에는 미역을 이런 식으로 안 했고, 억새를 엮어서 그렇게 했지. 옛날에 비하면 많이 발전 됐어. 옛날에는 기상도 그랬었고 사람이 추측을 가지고 바람이 분다든지, 허리가 아프다든지 그런 거 가지고 허리가 아프면 비가 온다 그러잖아. 대충 추측을 했지. 요즘은 기상이 발달 되어가지고 정확하잖아.” (천식만)

예전에는 이 억새를 엮어서 미역을 말렸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억새를 엮어서 미역을 말렸다고 한다.“건조가 좋아야 상품이 되거든. 만약에 날씨가 흐렸다든지 하면 색깔이 안 좋고, 미역이 건조과정에서 불량품이 막 생긴다. 우리 조상들은 건조 하는 방법을 잘 택하지 못하고 그래가지고 미역에 소금 간을 하고 그랬어. 제대로 못 말리니깐 짠 맛이 안 나지. 그래가지고 미역 젓을 담그고.” (천식만)

“내가 미역한 지가 50년인데 올해는 미역이 대 흉작이야. 대 흉작. 미역이 잘 마를 라면 햇볕, 바람, 바람도 많이 불면 안 되고 북서 계절풍 북동풍 내지는 북서풍, 남서풍이나 이런 바람이 불면 습도가 많거든. 건조 하는데 좋은 상품을 생산 시킬 수가 없어.” (천식만)

“여기는 파도가 많이 치고 양식도 못 하고 물이 말하자면 바닷물이 억센 거라. 그래서 모든 물건이 여기서 나는 것은 한 맛이 더 있다. 전복도 맛있고 멍게도 맛있고. 미역도 맛있고 미역도 빨아가지고 끓이면 퍼지지가 않는다. 매물도 미역은 끓일수록 더 맛있다. 센 파도에 고기나 이런 것들이 맛이 더 단단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비린내도 적고, 그런데서 물건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여물고 그렇다. 바다에 나는 건 다 맛있다. 여기 물건은 일등이다. 안 먹어본 사람은 몰라.” (심문연)

올해는 매물도에서 미역이 흉작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강정자 해녀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해녀 생활을 시작한 이래 올해처럼 미역이 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보통 매물도에서 4월쯤에는 동네 곳곳에 미역발을 펼쳐놓고 미역을 말리는데 올해는 그런 광경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베테랑 해녀 할머니에 따르면 미역이 이렇게 나지 않는 이유가 작년 겨울 날씨가 추워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는데 바다 온도가 너무 낮아버리면 미역 포자가 돌에 잘 붙지 않고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해보다 시세가 비싼 미역, 아직도 미역이 마을 사람들의 1년 수입원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미역 농사가 흉작이라 마을 사람들의 근심이 깊다.

매물도 사람들의 생계줄을 쥐고 있었던 마산 미역 객주 이야기

4월이 되면 동네 골목 곳곳마다 미역을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여기 남자들은 직장이 없는 기라. 그때만 해도 시내가 아니고 육지가 아니니깐 직장이 없고, 이리쳐 가고 돌을 치면 그때도 미역 이게 돌에 붙는 거라. 자연산 미역이 돌에 그런 걸 해녀가 캐가꼬 말라가지고 그거 해 가지고 벌어가지고 먹고 그거 덜어지면 또 돈 떨어지는 거라. 그러니깐 여유가 없어,” (심문연)

“그게 교통이 안 되니깐 물고기 잡은 것은 그런 걸 팔 만큼 판로가 어려웠고, 다만 이제 판다는 게 미역, 이거 건조시켜가지고 오래 보관 할 수 있으니깐. 보관 할 수 있으니까 방안에 이래. 미역발에다가 해가지고 방안에다 창고에 이래 재어놓고 마산 어시장에 팔았어. 그때만 해도 마산에서 미역을 많이 취급했어. 마산에 가서 객주가 다 있었거든. 마산 어시장 가면 객주가 죽 있었다고 요즘은 다 사라지고 없지만. 우리 매물도만 해도 제 집 나름대로 객주를 다 정해가지고 객주 한 열 개 있었는데 거기가면 물건을 위탁시켜서 팔고 저거들은 수수료 받거든. 우리 물건을 팔아주고.” (천식만)

“어 아침에 경매를 딱 해가지고 한 달에 이만 원이면 이만 원 거기서 6프로 수수료를 먹고 우리한테 무슨 혜택을 주느냐면 미역 안 나서 우리가 어려 울 때 돈을 대부를 해 주는 거라. 그때는 은행 문턱이 높아서 우리는 은행 거래도 못 했으니까. 우리는 아예 은행 거래를 못하고 객주에 가서 객주 사장에게 돈을 좀 빌려서 증서 써가지고 이듬해 봄부터 미역을 하면 미역을 팔아가지고4월이 되면 동네 골목 곳곳마다 미역을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갚고 그런 시기를 반복해 왔어.” (천식만)

생애사(1)

매물도 해녀 정착역사의 산 증인 노계춘 할머니

“그러니깐 여기 사람들이 아주 와 보니깐 해녀들이 없어서 그때는 돈 날게 없어, 바다에서는 어부들 고기 잡는다고 해 봐도 여기서 고기를 잡으면 요새는 연락선이 있고 이래 객선이 자주 배가 출입을 하니까 시내 가서 고기를 팔아 와서 돈을 많이 사는데, 그 때는 와 보니까 고기를 낚아도 많이 낚아도 팔아먹을 자신이 없는 거라. 섬에서 다 낚아 와서 다 낚아 먹는데, 돈 주고 사 먹을 뭣 이가 안 돼. 그래서 사는 형편이 보니까 너무 참 안타깝게 살아가는 기라."

“그래 가지고 인자 아, 일단 여기 해녀가 전혀 없으니까 그러니까 물 밑에 소라, 전복이 만장같이 있어도 그걸 잡아 낼 수가 없는 기라. 해녀가 없으니까. 그래서 나가 가만히 여기 유지 급 되는 그 때 이장 되는 사람을 만나 가지고 여기에 해녀가 없어 가지고 물 밑에 물건이 꽉 찼는데, 이렇게 그 아까운 물건을 사람이 늙어서 죽는 식으로 물건도 여러 해가 되면 다 죽어 불고 또 새로 나오고 그 아까운 물건을 돈을 다 내불는데, 해녀를 제주에서 해녀를 인수해가 주거든, 내가 말해가 아저씨가 인자 사업을 벌여서 배를 하나 발동기를 만들어 가지고 인자 그 해녀들을 실어서, 해녀가 여기 처음 실려 올 때 18명, 다음에는 또 19명, 보통 그냥 18명 한 몇 년을 인수를 해다 주었지. 해녀들 처음 올 때는 18명,”

“해녀 사업을 하는 사람보고 전주. 육지에는 이 해녀가 없고, 다이빙도 없고, 그러니까 제주 해녀가 옴으로써 돈을 많이 벌어주고, 그 사람들도 벌어주고, 해녀들도 벌어가고 이래 했는데, 어쨌건 왜 이리 지방 사람은 못 해오냐 하면 전주를 믿고 올 해녀가 없는 거라. 그러니까 나가 같이 따라 와가지고 나가 주동을 해가지고 이제는 나가 인솔자가 되는 기라. 인솔자가 돼 가지고 해녀 인수를 인자 십 명이면 십 명 해다 주고 또 18명 할 땐 18명을 해다 주고 일 년에 그러면 언제 나오느냐 하면 음력으로, 음력으로 인제 음력으로 이 월 그믐 음력 3월 한 초에 나와야 여기 사업을, 작업을 시작하는 기라. 그 전에 오면 추워서 추우니까 바다에 가서 일을, 나와서 시간이 무리해서 오래 못 하니까 그래서 3월 그믐 돼서 지금 딱 이 때에 제주서 인수를요.”

노계춘 할머니가 직접 작성한 제주도 해녀 장부

“인수해서 전주들한테 맡겨, 20명, 19명 해 왔다 이래서 맡기면 4월 달부터 작업을 음력 4월부터 작업을 음력 4월, 5월, 6월, 7월, 8월 5개월 작업해서 추석 아래 제주도를 또 보내지. 인자 보내줘야노계춘 할머니가 직접 작성한 제주도 해녀 장부 부모들이 인자 안심하고 추석 때는 다 모여져서 또 추석을 지내고 하니까 추석 아래 다 보내줄라 하면은 그 때까지는 작업을 한 것을 몽땅해가 전주 얼마 주고 나머지 가져가고. 그래서 3년만 벌면 제주서 밭을 한 천 평짜리, 800평, 900평 이런 밭을 또 사는 기라.”

“어쨌든 여기 와서 몇 년을 그리 해다 주다 보니까 왜 이리 정착이 됐나 하면 이 물건을 제주 해녀들이, 제주 해녀가 안 오면은 어쨌든 썩어 내부는 물건, 아까워서 나가 이제 여기를 살아야 이 물건을 올리겠다 해가지고 그래 나와서 인솔을 해서 오라, 와서 시작하니까 여기 사람들도 하나씩 배워서 지방 사람들도 배워가지고 해녀를 하는기라. 제주도 해녀 데려다 놓고 작업하는데 고 뒤에 이장 어머니(심문연 할머니)가 배워서 이제는 일류 상군(해녀 중 으뜸)이지.”

이제 물질을 그만 둔지 십 년째이지만 아직도 마을에서 노계춘 할머니는 제주도에서 해녀를 데리고 온 해녀 할머니로 통한다.

16살 제주도 성산포에서 시작한 해녀 생활, 해녀가 삶의 전부라고 여겼고, 대진, 포항, 강원도 등 전국 각지를 돌면서 제주도에서 해녀를 데리고 와 육지에 물질하는 법을 가르쳤다.

늦은 나이에 남편을 만나서 같은 고향 사람이 살고 있는 매물도로 두 딸과 남편을 데리고 들어왔다. 매물도에서도 해녀를 인솔해 주던 일을 놓을 수가 없었다.

60년 가까운 해녀 생활 뒤에 얻은 건 심장병 뿐, 매일 수십 가지의 약을 챙겨 먹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야 해 내년이면 당금마을을 떠나 통영의 작은 임대 아파트로 가야 하지만 할머니의 반평생을 함께 했던 천직이라 여겼던 해녀 일을 한 번도 후회 한적 없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고향으로 돌아가 함께 자랐던 제주도 고향 친구들의 안부를 듣는 것 뿐, 여전히 나 아직 살아있다를 제주도 친구들에게 외치고픈 할머니. 80이 넘어 노쇠해진 몸을 이끌고 내년이면 제 2의 고향인 매물도를 떠나 통영으로 떠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물질,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숭고한 작업. 당금마을 최고령 해녀, 강정자 할머니

“우리는 제주서. 우리는 늦게 왔지 여기오니까 30년 쪼끔 넘었지. 30~40대 쯤 돼서 왔지, 제주서 살다가. 우리 또 이모가 먼저 와서 살았거든, 그 길로 이제 그리 해가지고. 이리 온 거지. 어 나는 많이 안 하거든 미역 할 때나 하고 성게 있을 때 좀 하고 힘쓰는 일 안하거든. 나이도 좀 들고. 내가 물질해서 바다에 들어가고 하는 건 열여덟 살.”

“해녀를 제주도 가서 모집해가지고 여기 와서 작업할 사람을 제주도 가서 모집해가지고 여기 와서 작업할 사람들 데리고 와서 돈 벌고 8월 되면 들어가고 봄 나면 다시 들어오고, 근데 이제 작업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죽고 이제는 배우는 사람이 없고 해서 이제는 없다. 당금에 있는 세 사람 끝나면 없다 이제.”

“제주도에서 해녀가 없어, 거의 없지 많이 없지. 배우는 사람도 없고 제주도도 사람이 없어. 그러니깐 제주는 해녀가 없어가지고 바다에서 생산을 많이 못 올리니깐 해녀를 법에서 사또같이 모신다고 안 하나. 우리가 작업해 와서 옷 벗어서 목욕하고 하는 집도 다 지어주고 바로 해변에 냉장고 놓아주고 가스렌지 놓아주고 이제 그 특별히 병원도 해녀만 다니는 병원이 있고 제주서 해녀들은 얼마나 사랑받는다고 하더라. 법에 다 그렇게 해가지고.”

“아이가 어릴 때 남한테 맡겨두고 바다에 들어가면 물속에 들어가면 아이 우는 소리만 귀에 쟁쟁 들리고 바다에 들어가면 무슨 생각나나 살아가는 생각. 살아나는 생각이 나지지. 물속에 들어갈 때마다 우리가 내가 이리 살아졌구나 한 것을 생각 할 때가 있지.

“왜 파도 칠 때는 무섭지. 파도 칠 때는 무서워도 파도 안 칠 때 는 무서운 거 그런 건 없거든. 바다에 들어가서 무서운 생각을 하면 바다에 못 들어가지. 그런 생각은 없는데 파도가 많이 갑자기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바람이 올라와가지고 할 때는 식겁하지 겁이 팔짝팔짝나지,”

노계춘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제주도 출신인 강정자 할머니. 30대 늦은 나이에 이모가 있는 매물도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녀 생활. 타향살이 설움을 딛고 산지 어연 40년째다. 이제는 미역이나 성게, 가벼운 것들만 개발하는 상태지만 한창 때는 물질 잘하는 해녀로 소문났었다. 젊었을 적 물속에 들어가면 두고 온 어린 자식 생각, 살아온 지난날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자연스레 떠올랐다는 강정자 할머니. 노쇠한 몸을 물속에 들어가면 이 바다가 나와 내 자식들을 매물도에서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는 생각에 고맙다는 마음이 먼저 든단다. 다만 제주도처럼 해녀들을 대접해주지 않는 것에 마음이 상하긴 하지만 아직도 개발(물질)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에 감사할 따름이다.

육지 새댁이 매물도 일류 해녀 상군이 되기까지,해녀 밥 40년 인생, 심문연 할머니

“맨 처음에 물질 할 때 안 무섭고 참 재밌더라고, 무서우면 못하지. 안 무섭고 참 재밌더라고. 바다 밑에 물건이 있으니까. 전복도 있고 소라도 그거 잡는 그것만 신경 쓰이고 무서운 거 없어. 해먹고 살 그게 밥그릇이네 밥그릇. 물질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어. 본래 해녀들은 제주에서 나가지고 본래 개발 (물질) 잘 하는 사람이 있잖아. 우리는 그냥 솜(작은 성게) 잔잔하게, 수영만 하면 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그리고 생활에 쪼달 리다 보니까 우리가 이걸 해야 된다. 우리가 이걸 해야 밥을 먹고 산다. 그래 열심히 했지.”

“고생이지 뭐. 그때는 고무 옷도 없었고. 내복 속옷 이런 거 입고 해가지고 추워가지고 솜 조금 잡아가지고 올라가서 불 쬐고 가에 있다가 들어가고 고생했지, 그때는 돈 벌 길이 없었어. 밭에 것도 돈이 안 되고. 그래도 바다에서 그거 쪼금 하며 쌀 한 가마 사먹을 수 있고.”

“그때는 잔잔한 솜 잡아가지고 우리 잡아 와서 알로까면 여기 받는 사람이 있어가지고 솜 잡아주고 쌀 한가마 받아 오면 그때만 해도 부자였대. 성게 잔잔한 거를 보고 솜 시커먼 거 그거 말고 잔잔한 거 큰 거 말고 잔잔한 거 솜이라고 또 있다. 첨에는 그런 거 밖에 못 잡아. 할 줄을 모르니까. 제주도 해녀들은 큰 걸 잡아오고 그때 나는 배울 때는 그런 거 밖에 못 잡았어. 물 깊은 데를 못 들어가니까. 처음에 그때는 우리가 배우고 있으니까 그런 건 동산에 가야 물에 쪼끔만 들어가면 있으니깐, 깊은데 있는 건 돌로 탁 갖다놓고 다시 들어가서 하고 그랬지. 제주도 해녀들은 여기 와서 하는 사람들은 숨이 기니까 푹 들어갔다가 오고. 첨에 그래서 했어. 배워가지고.”

“해녀를 안 하게 되면 돈 벌 길이 없다. 여기 남자들은 직장이 없는 기라. 그때만 해도 시내가 아니고 육지가 아니니까, 돈이 여유가 없고 매일 빚을 내어가지고 하니까 애들은 커가고 그래가 도저히 할 게 없어서 그걸 했지. 그 당시 아줌마 몇 이가 했는데 다 못하고 다 가버리고 나하고 천식만 씨. 한 동네서 결혼해서 왔다. 천식만씨 할머니. 친구다. 나보다 한살이 많고 그쪽에서 먼저 매물도로 시집와가지고 저 집에서 날로 중매를 해가지고 이래 왔다. 그래서 둘이 개발로 배워가지고 지금까지 하고 안 있나. 지금은 선수가 되가지고 전복도 따고 소라도 잡고 솜 그런건 아예 상대도 안하고.”

“나는 올해 67인데 삼년만 있으면 70인데. 그때도 할 란가 싶다. 우리 아들이 어서어서 돈을 벌어서 쪼깨 그거 해야 내가 안 할긴데. 또 물에 가는 재미로. 참 재밌다. 전복도 따고 해삼도 있는 거 주어오고. 무서운 건 없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마을회관의 군기반장 역할을 톡톡히 하는 심문연 할머니. 조그마한 체구에서 나오는 파워는 젊은 사람 못지않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거뜬히 젊은 해녀들과 겨루어 뒤지지 않는 개발 실력을 가진 심문연 할머니는 처음 배를 곯고 있는 자식들을 위해 물로 뛰어들었다. 그 뒤부터 시작된 해녀의 삶, 고무 옷이 없던 시절 겨울이면 불을 쪼아가며 일을 했고, 성게 가시에 찔려 손이 성할 날이 없어도 천직이라 생각하고 물질을 멈추지 않았다. 어언 40년 아직도 바다를 보면 설렌다는 할머니, 망태기 가득 성게며, 전복, 멍게, 해삼을 가지고 오는 날이면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난다.

아버지 모시 적삼 한 올 한 올 서려있는 9살 소녀의 물질 이야기 이삼순 할머니

“우리가 여기 섬에 살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 없는 세상 살고 나도 장사도 많이 해보고 안 해본 장사 없고. 또 물에 들어가서 헤엄쳐가 개발도 해보고 요서 나서 요서 우리 목욕 하믄 헤엄 안 치나? 그거를 하기 때문에 요기서 인자 배워가지고 나 돈도 많이 벌었다. 많이 벌이고 인자 장사도 해보고 별 짓을 다해보고 사는 세상이, 우리가 인자 나이 이래 많이 묵었으니께. 좀 안 좋지, 인자. 일찍이 나서 일찍이 죽어삐든가. 일찍이 나서 쪼까 좋은 세상 보든가. 그랗제? .”

“쪼깨낼 때부터 .아홉 살 먹어서 그 물질 해가 물에 거 있는 거 팔아가지고. 팔면 우리 아부지 딸, 딸 나 하나뿐이 아니라고, 요새 그 뭐 모시 안 있나 모시, 생모시 주적삼 다 시키고 그랬다. 모시. 요새 사 비싸지만 모시라 그러면 알아준다 아니가. 아부지는 인제 70살에 세상 뜨시고.”

당금마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집을 짓고 살고 계신 이삼순 할머니. 마을에서 양말장사부터 시작해서 해녀, 국수 장사, 옷 장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할머니는 매물도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매물도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곳 남자와 결혼해 자식을 낳고 알콩달콩 살던 할머니는 매물도 토박이로 누가 언제 이사 들어왔고, 어느 집이 언제 지었으며 누구 집 숟가락이 몇 개까지 있는지 소상하게 알 정도로 마을 이야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

제주도 출신인 부모님 덕에 어릴 때부터 물질을 배우고, 배운 물질로 전복이며 홍합을 팔아 아버지 모시 적삼을 해 드린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바다를 닮았던 아버지를그리워 하고 보고 싶어 하는 할머니는 오늘도 마을의 제일 꼭대기 집에서 고양이 한 마리와 마을 앞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생애사(2)

편지가 맺어준 인연, 매물도 환상의 커플, 김인옥 김옥선 부부

“이 사람하고 펜팔 했지 우리 집안에 형수님이 요쪽 또 매물도 대항마을에 친정이 있는기라. 친정이라 그래 내가 형수님 좋은 처녀 있거든. 우찌~ 우찌 알아가지고 집사람하고 펜팔을 했어요. 펜팔을 해가지고 만나가지고 아들딸 잘 놓고 여기서 인자 남의 배를 좀 다니다가 .내가 내 사업을 인자 시작했지 낚시만 딴 거 하나도 안하고 낚시만 해가지고 성공했지.” (김인옥 어촌계장)

“우리 신랑하고 우리 신랑이 나가 시집가서 살아 왔는 세상을 치면 날은 얼마 안 되도 진짜로 편지를 모으면 책을 내도 몇 권이 될 꺼구만. 근데 옛날에 필적도 좋았는데 지금은 글 적는 게 영 못 적어. 글씨를 또박 또박 하이 함 예쁘게 쓴다하이. 지금은 고마 그리면 그리는 데로 적지 .글씨도 반하지만 생긴 것도 예뻤고, 옛날에는 우리 집 신랑이 담배 떼기 전에는 빼빼 말라가꼬 총각시절에는 진짜 예뻤어.” (김옥선 구판장 숙모)

“그래가 총각이 찾아 왔는거라. 펜팔 와 가지고 찾아왔는데 총각을 보는 그날 뱃머리 내려가서 딱 봤는데 사진에 본 총각이라. 다리 이게 딱 들리 가지고 안 있나, 그길로 들어 누워가지고 1년 가까이 고생했다니까. 놀램병 들리가지고. 그런다 그라. 이기 놀램이 사람이 심장이 놀라가지고~ 총각을 보고 인자 놀래가꼬, 가이 이랬는데 그길로 참말로 놀랬는데~이기 방에 딱 앉아 있으면은 앞이 요래 고마 앞이 고마 방 캄캄한 방만 지고 마 아무~것도 안보여 이래 앉아있는데 도 눈도 눈 떠지도 않고.” (김옥선)

“연수당 가가꼬, 한약방 결국에는 거기 가가지고 나았어. 나았는데 진짜 거 놀람병 그기 결국은 우리 신랑이 데리고 가서 나았지, 그 병을, 거기 가서 나샀어. 겁난병, 진짜 겁난병이데이. 아니 나가 그때 열아홉 살 먹어서, 놀랬어 갑자기 찾아와서 응~그래가꼬 나도 어리고 그래 놀래가지고 .” (김옥선) “ 촌에서 총각이 있나 거 아가씨들 둘러 보제, 섬에서 총각이 총각이 있나 이래 예쁜 총각이 있나 나가 그때는 잘생깄거든.” (김인옥)

“그때는 내가 여자 깡패였어. 소리치고 깡패처럼 전부 두드리맞고 살았어. 어 그랬는데 총각을, 진짜 우리 집에 찾아옹께는 그래 놀래가지고 그 놀램병이 걸래가지고 결국엔 우리 신랑이 인자 곤치주가꼬 인자 했지. 그래가지고 내 또 해주께이. 우리 엄마가 아부지가 인자 저 총각이 인자 또 다른데서 중신이 들어왔는데 총각이 그 중신 소릴 잘 들어 와가지고 딱 사활을 다지고 6일이고 그 중신재비 갈 때까지 안 나가 가는 기라 집에 딱잉. 결국엔 그때는 안돼서 나가 인자 포기를 하고 이 총각 집에 가야되겠다, 이래됐는기라 우리 엄마 말이 나가 열아홉 살 밖에 안됐는데 마 머시아나...그런데 인자 우리 큰오빠하고 작은아버지하고 둘이 있어 우리 신랑 편을 들어가지고, 나를 보고 도망을 가라 그랬어.” (김옥선)

“도망을 가라 이래 됐는데, 도망을 가고 인자 우리 엄마 아부지가 인자 허락을 안하니까. 아부지가 큰방에 아파가 누워있는데, 아부지 화장실 가고 나거든 그 아부지 자리에 누부삐라 그랬어 우리 큰 오라버니가. 인자 우리 신랑을 보고 누가꼬 있으면은 인자 아부지가 가서 인자 누울 데가 없자나 총각이 거 딱 누붔으니까. 그래가 밥은 작은 아부지, 물 뜨는 아부지 아있나, 할배, 그 할배 집에서 밥 먹고 가고 (중략) 그리고 나는 인자 도망을 갔는데, 통영 그때는 이린 기 없고 고 우리 작은 배가 저 도선이 있었는데 타고 도망을 갔는데, 통영에 오니까 우리 아부지가 수배를 내맀는기라.” (김옥선)

“수배를. 경찰서 순경이 보냈는 거라. 경찰서 순경이 딱 와가지고 들어와가꼬 내를 갖다가 잡아갔다가 보호실에 갖다 여였겠다 그랬는기라. 그래가 내가 할 말이 내가 무슨 죄짔는 거 있느냐 못 간다 그러니까.아부지가 일단 보호실에 갖다 여라 캤는기라 그래서 내는 못 가고 내는 죄진 것도 없는데 당신 내를 잡아갈 권리가 없다 나는 동생 집 동생이 통영 옆에 부락에 있는데 있어. 동피랑 있어. 거기 우리 동생 집에 가서 있을기다 뭐 우짜뿐끼 나가 뭐 죄진는 기 없는데 나로 우째 잡아갈끼라 우리 아부지가 아무리 잡아가지고 넣으라고 했지만 .그래 나는 인자 미수동에 시갓집에 들어가서 들어 앉아버렸지. 그길로...어 그래가꼬 들어 앉아버리니 총각이 거. 우리 아부지하고 어무이하고 싸울 필요가 없는기라, 올라왔어.” (김옥선)

“어 우리 아부지 큰아버지가 그래하라 캤어. 시키주드라고. 그래 안 했으면 못 갔지 어른들이 옆에서 아이 그래몬 이래가 결국 인자 나가가 들어 앉아 버리는데 우리 엄마가 우짤끼고 델고 와봐 델고 와봐야 아무것도 없는데 총각 따라가서 사는 걸 갖다가. 그래 가지고 몇 년 있다가 딸 놓고 나서 그래 결혼을 했어. 식을 마칬어” (김옥선)

매물도 환상의 커플 김인옥 어촌계장님과 김옥선 구판장 숙모!! 밤낮으로 두 분 다 마을일에 눈코 뜰 새가 없다.

시댁에서 살다가 어촌계장님의 사업 실패로 매물도에 다시 들어 온지 32년 째. 처음에 그렇게 반대했던 친정어머니(이삼순 할머니)의 도움으로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어엿한 집과 배를 몰며 마을 유지로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부부의 큰 아들과 며느리도 매물도가 인연이 되어 결혼한 케이스로, 민박집에 놀러온 지금의 며느리가 부부의 큰 아들을 보고 첫 눈에 반해 친정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김인옥 어촌계장님 부부와 그들의 큰 아들 부부. 배에서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어촌계장님 부부와 민박집에서 사랑을 이룬 두 아들 부부. 아마도 매물도의 따사로운 햇볕과 살랑이는 바람은 선남선녀들의 마음에 사랑의 불씨를 지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매물도,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해 준 터전. 박성배, 김진미 부부

“창원에 살다가 이제 우리 아저씨가 인제 뭐 사업 인제 조립 건물 하다가 I.M.F 만나가꼬 혼자 바람 쐬러 여 왔다가, 이제 아버님 고기 잡는 거 보고 하루 100만원씩 버는 거야 물고기를. 돈이 여기 다모였다 이래 여서 정착을 해야지 이래가꼬 한데 인자 나는 몬 오겄다,”

“이래 하다가 한 나는 임신해서, 어렵게 가져서 못 오고. 신랑만 맨날 1년 왔다 갔다 하다가 아 놓고 나서 요기 와서 인제 정착을 하게 됐지 인제 그 때는 내가 와서 돈벌이도 없고 뭐 집도 없고 이러니까 어머니 집에서 가겔 ,먹고 살을 가게 있으니까, 가게 해라 이러고 한 5년 하고 그때는 인제 아파트 다 팔고 이래가 어머이 돈을 보태 가꼬, 배를 산거야 그때 어머이 돈 보태서 배를 사서 가게하면서 갚았지 이제 갚고 나서 가게 하곤 친정에도 못 가고 메여 있으니까, 나는 못 나가고 그래가 이집을 사라 또 이래 보태가꼬 또 이래 우리 집을 사가지고 그때부터 이렇게 여기서 정착을 하게 됐지. 가게면 구판장. 하고 싶은 사람 경매를 해가지고 제일 마이 써낸 사람이 가게를 운영하지.” (김진미, 박성배 이장님 사모님)

“이장이 들어 올 거라고 창원에 살았는데. 창원에 애 하나 놓고 살았는데 우리는 여기 있으니까 모르지. 근데 자기가 하는 게 사업이 잘 안됐던 갑데. 거기서 고생을 했어. 했는데 왔더라고 그래 고마 여기 들어와서 살았으면 좋겠다 하데.

아버지가 그때만 해도 그래 하데 뭐 크게 배운 게 없고 뭐 많이 배운 거 같으면 어디 취직을 하지만 니가 꼭 들어올 거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들어오라고 하데 그래서 바로 들어왔다. 우리 며느리는 안 들어오고 한 일 년쯤 더 있다가 들어오고. 빨리 들어왔다. 일년 정도 고생을 했다. 아버지 밑에서 고생 많이 했다.” (심문연, 박성배 이장님 어머니)

“일도 서툴고 고생했다. 국민 학교 여기서 나와서 중학교 통영에서 다니고 고등학교 창원서 다니고. 그래서 바다에 하는 거 모른다 아이가베. 그래서 우리 쪼깨난 배 타고 다니면서 우리 영감 고기 잡으러 따라 다니면서 얼마나 많이 혼났는고. 어 할아버지 급하다. 할아버지 꼼짝 못한다 저 아들 꼼짝 못한다 요 앞에 창고 앞에 울고 앉아 있는데 못하겠더라. 나는 갈 줄 알았다.” (심문연, 박성배 이장님 어머니)

자칭 타칭 매물도 최고의 얼짱, 박성배 이장님, 전형적인 바다 사나이로 목소리도 크고 마을일을 함에 있어서 추진력도 있어서 마을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 매물도에 정착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어간다. 처음에 바다 일도 잘 몰라서 차근차근 아버지로부터 고기 잡는 법부터 스킨스쿠버 하는 법, 배를 모는 법까지 배웠다.

이제는 든든히 마을 일꾼으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창원에서의 실패를 딛고 매물도에서 다시 재기에 성공한 박성배 이장님, 그가 앞으로 꿈꾸고 만들어가는 매물도의 모습이 기대 된다.

매물도 바다에서 사랑이라는 녀석을 캔 김예옥 할머니

“물질, 내가 칠십 두 살 까지 했다. 제주도에서 작업하러 와가. 제주도도 해녀들이 많거든 원래는 제주도 해녀출신이 낫지. 그래서 해가 인자 그때는 스물두살잉게로 뭐, 아가 때 아니가 아이가 그래가지고 여기서 인자 살았지 그래 그렇다 이 좋은데 와서머 그때가 또 마 연애 할 거 있나. 한 일 년 간 이년간 지나고 그래 됐지 .나는 인자 제주도 갔다 와서 그 인자 첨에 와가지고 하다가 제주도 가가지고 갔다가 나와가지고 생활하는데 인자 영감하고 그래 됐지. 사랑하니까 그래 됐지 인자 첫 번에 와서는 안 그랬어. 첫 번에 와서는. 뭐 그때 와서 연애, 연앨 할 수가 있나? 한 일 년 간 몇 년간 지나고 그래 됐지. 나는 인자 제주도 갔다 와가꼬 인제 첨에 와가지고 첨에 하다가 다불 제주도 가가지고 갔다가 그 안에 와가지고 생활하는데 인자 영감하고 그래 됐지.”

제주도에서 매물도로 작업하러 온 김예옥 할머니. 전복, 소라, 멍게, 해삼 매물도 바다에서 수많은 값진 물건들을 캐냈지만 할머니가 가장 건졌던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사랑, 매물도에서 평생 베필인 할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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